손에 쥔 한 잔의 대만 차. 그 속에는 마치 암호처럼 숨겨진 **“차 품종 코드”**가 있습니다.
대만 차의 세계에서 **청심오룡(Qingxin Oolong)**과 **금훤차(Jinxuan Tea, 대만품종 12호)**는 전혀 다른 두 가지 풍미 철학을 대표합니다.
하나는 전통의 깊은 운미를 간직하고, 다른 하나는 현대적인 혁신에서 비롯된 맑고 부드러운 향을 자랑합니다.
이 두 주요 품종의 차이는 단순히 찻잔 속 맛을 결정하는 것을 넘어, 대만 차 산업 전체의 발전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청심오룡과 금훤차의 근본적인 차이는 향기만이 아닙니다. 청심오룡은 뛰어난 숙성 가능성과 복합적인 풍미 층차로 유명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미묘한 변화와 깊이를 더합니다. 반면 금훤차(대만품종 12호)는 특유의 밀크향과 “신선할 때 마셔야 하는” 특성을 지니며, 수확 후 가능한 한 빨리 음용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러한 기본 성향의 차이는 음용 경험뿐 아니라 시장에서의 위치와 상업적 가치까지 결정합니다.
청심오룡의 전통 운미 코드
대만 전통 차를 대표하는 청심오룡은 복잡한 맛의 층차와 뛰어난 저장성을 통해 대만 차 산업의 깊은 뿌리를 보여줍니다.
중발효(中發酵)로 가공하면 황금빛의 차탕(茶湯, 우린 차의 색)을 띠고, 진하면서도 부드러운 맛과 뚜렷한 회감(回甘, 마신 후 입안에 퍼지는 은은한 단맛)을 선사합니다.
이는 전통적인 **동정오룡차(Dong Ding Oolong)**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난터우현 루구향의 곤위엔 다창(崑園茶廠) 장스룽(張世榮)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전의 중발효·유연(揉捻) 방식으로 만든 청심오룡은 황금빛 차탕을 띠고 “내탕성(耐泡性, 여러 번 우려도 맛이 유지됨)”이 뛰어나며, 맛이 진하고 회감이 강합니다. 이 방식은 손이 많이 가지만, 품종 고유의 개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습니다.
장 대표는 1970년대부터의 차 샘플을 보관하며, 시대별 청심오룡의 품질 변화를 직접 증명하고 있습니다.
청심오룡은 숙성에 강해, 시간이 지날수록 향이 깊어지는 **‘진향(陳香, 숙성향)’**을 띠게 됩니다. 이 특성은 차 수집가나 장기 거래에 이상적이며, “세월이 빚은 차”라는 가치를 더해줍니다.
금훤차의 혁신 향기 코드
**금훤차(대만품종 12호)**는 대만 차 품종 개량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다른 어떤 차에서도 찾기 힘든 독특한 밀크향입니다.
1980년대 고산오룡 재배 초기, 많은 차 농가가 이 신품종에 매료되어 ‘금훤 열풍’을 일으켰고, 소비자들 역시 그 부드럽고 달콤한 향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금훤차는 가벼운 발효(경발효)로 가공할 때 그 매력이 극대화됩니다.
향이 직관적이고 선명해, 처음 대만 차를 접하는 사람도 쉽게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로 인해 대만 차의 세계로 입문하는 역할을 하며, 대중 친화적인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그러나 금훤차에는 한계도 있습니다. 청심오룡처럼 장기간 저장할 수 없고, 향의 절정은 신선할 때 찾아옵니다.
따라서 장거리 수송이나 장기 보관을 위해서는 고도화된 보존 기술과 냉장 물류 시스템이 필수적입니다.
제다(製茶) 공정이 풍미에 미치는 영향
차의 풍미는 품종뿐 아니라, 어떤 제다 공정을 거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대만 오룡차의 가공 방식은 전통적인 중발효에서 경발효로 변화해왔으며, 이 변화는 품종마다 다른 영향을 주었습니다.
청심오룡의 경우, 경발효는 향을 돋보이게 하고, ‘견청득장(見青得獎, 연두빛이 도는 차가 품평회에서 상을 받기 쉬운 경향)’ 기준에는 부합하지만, 전통적인 깊이와 운미 층차를 희생할 수 있습니다.
장스룽 대표처럼 중발효를 고집하는 차 농가들은 “청심오룡의 진정한 개성을 살리는 길”이라 믿으며 전통 제다를 이어갑니다.
반대로 금훤차는 경발효에서 진가를 발휘합니다. 밀크향이 극대화되며, 특히 중국 본토 시장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이는 본토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청향형(輕香型) 차의 성향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양안(兩岸) 시장의 다른 선택
대만 본토 시장에서는 소비자 취향이 성숙해짐에 따라 청심오룡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전통 제다를 지킨 제품은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확보하며, “불황이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안정적인 수요를 유지합니다.
반면, 대만식 차가 막 자리 잡기 시작한 중국 본토 시장에서는 금훤차가 가장 인기 있는 품종입니다.
직접적이고 화사한 향이 초보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은 “차 입문자는 뚜렷한 향을, 숙련된 애호가는 깊은 운미와 전체적인 품질을 중시한다”는 소비 패턴을 잘 보여줍니다.
차 성분의 과학적 분석
차 품종에 따라 영양 및 기능성 성분에서도 차이가 나타납니다.
대만성(省)의 오룡 품종 성분 비교 자료에 따르면, 청심오룡의 카테킨 함량은 평균 12.4%로 매우 높으며, 금훤차는 평균 12.1%로 근소한 차이지만, 향기 성분 구성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 차이가 바로 두 품종의 전혀 다른 풍미를 만드는 과학적 근거입니다.
청심오룡의 높은 폴리페놀 함량은 장기 보관에 유리하며, 금훤차의 특수 향기 성분은 신선할 때 최대의 매력을 발휘합니다.
미래의 품종 전략
양안 시장의 상반된 수요를 고려할 때, 대만 차 산업에는 더 정밀한 품종 전략이 필요합니다.
청심오룡은 전통 운미와 숙성 가능성을 바탕으로 고급 컬렉션 시장 및 성숙한 소비층에 적합합니다.
금훤차는 친근하고 뚜렷한 향을 강점으로, 신흥 시장과 젊은 소비층에 알맞습니다.
또한 같은 품종이라도 차밭의 위치와 토양 조건에 따라 품질이 달라집니다.
대만의 독특한 고산 환경과 테루아르는 두 품종 모두에 대체 불가능한 성장 조건을 제공합니다.
각 품종의 핵심 특성을 지키면서도, 제다 방식의 유연한 운용으로 시장별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대만 차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할 것입니다.
결국 “차 품종 코드”를 해독한다는 것은, 차의 본질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청심오룡의 깊은 운미든, 금훤차의 맑고 부드러운 향이든, 모두 대만 차 산업이 다른 시대에 남긴 혁신의 결과물이며, 우리가 음미하고 소중히 여길 가치가 있습니다.